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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퍼온 글...

개전두화이 2007.03.06 22:52 조회 수 : 64

축의금 만 삼천원

몹시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내 친구 형주의 생일이었습니다.
생일파티는 밤11시가 넘어 끝났습니다.
형주와 함께 밤 늦은 버스에 탔습니다.
버스에 탄지30분 쯤 지났을 때, 형주가 말했습니다.
“소변이 급해......"
종로3가에서 내렸습니다.
무작정 큰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화장실은3층에 있었습니다.
사방이 어두웠습니다.
화장실 표시도 겨우 보였습니다.
화장실 앞 어두운 복도에 누군가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친친 감은 여자가
추위에 몸을 떨면서 씀바귀 꽃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한 겨울인데도 그녀는 여름 슬리퍼를 신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외투도 입고 있지 않았습니다.
두 눈을 꼭 감은 그녀는
누더기 같은 외투로 아기를 감싸 안고 있었습니다.
엄마 품에서 아기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화장실을 나왔을 때도
아기엄마는 눈을 꼭 감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형주는 아기 엄마 옆으로 조심조심 걸어갔습니다.
생일 선물로 받은 케이크를
형주는 아기엄마 옆에 살며시 내려놓았습니다.
케이크 상자 위에 천 원짜리 몇 장도 올려놓았습니다.
아무 말 없이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계단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누군가 급하게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기 엄마였습니다.
"저..... 이거 두고 가셨는데요."
케이크 상자와 천 원짜리 몇 장을 손에 들고
아기엄마는 선하디 선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시간이 잠시 멈췄습니다.
"저희 꺼 아닌데요."
형주는 당황스런 눈빛으로 조심조심 말했습니다.

건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거리의 네온사인이 붉은 눈을 치뜨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겨울바람 한 줄기가 지나갔습니다.

형주는 차비까지 몽땅 털어 아기 엄마에게 주고 왔습니다.
우리는 종로에서 집까지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네 시간이 넘도록 걸었습니다.
형주는 양말만 달랑 신고 한 겨울 추운 거리를 걸었습니다.
여름 슬리퍼를 신고 추위에 떨고 있는 아기엄마 옆에,
형주는 신발까지 벗어두고 왔습니다.
"형주야......"
목이 메었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형주는 소년처럼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 발...... 이...... 좀...... 작...... 잖...... 아...... 히히."
이 아홉 글자를 말하는 것조차도
내 친구 형주에겐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말 한 마디를 하려면
형주는 이끼 낀 돌다리를 수도 없이 건너야 했습니다.
말을 할 때, 형주의 얼굴은 가장 슬펐습니다.
형주는 뇌성마비로 많이 아팠습니다.

세월은 물고기처럼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나는 서른 살이 넘었고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식 날이었습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 리가 없는데.....
예식장 로비에 서서 형주를 찾았지만 끝끝내 형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급히 올라왔습니다.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서 여덟 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어쩌나 예식이 다 끝나버렸네....”
숨을 몰아쉬는 친구 아내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습니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석민이 아빠가 이 편지 전해드리라고 했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습니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장사이기에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굶어야한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 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 천 원이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 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 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내겐 있었으니까.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기쁘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 가서 먹어라. 친구여, 오늘은 너의 날이다.
이 좋은 날 너와 함께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있던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 장.....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한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 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었습니다.
나는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습니다.
“형주 이 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먹었습니다.
자꾸만 눈물이 나왔습니다.
새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 할 텐데
자꾸만 눈물이 나왔습니다.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 등 뒤에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꽉 물었습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습니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 가운데 서서
어깨를 출렁이며 나는 울었습니다.

형주는 지금 조그만 지방 읍내에서 서점을 하고 있습니다.
열 평도 안 되는 조그만 서점이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이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무 의자가 여덟 개입니다.
그 조그만 서점에서 내 책 저자 사인회를 하자고 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여덟 시간을 달렸습니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줄 때와는 다른 행복이었습니다.
정오부터 밤9시까지 사인회는 아홉 시간이나 계속됐습니다.
사인을 받은 사람은 일곱 명이었습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마음으로만 이야기 했습니다.
“형주야, 나도 너처럼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살며시 웃으며 담장 너머로 손을 내미는 사랑 많은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 소설가 이철환씨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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