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때만해도 워낙에 악필이었던 나.....
글씨를 이쁘게 쓰는 친구들이 부러워,
칠판에 글씨를 멋드러지게 쓰시는 선생님들이 부러워,
수업시간에 필기하다 이쁘게 써지지 않는 글자는
몇번이고 반복해서 연습했다.
그렇게 글씨연습을 하니 6개월도 안되서 대략 3가지 정도의
이쁜 글씨체를 무협지에 나오는 무공마냥 자유자제로 구사할수 있었다.
고등학교때와 군대시절에는 연애편지 대필담당이었고,
대학교 시절 전지&매직과는 아주 깊은 관계였으며
레포트도 꼭 손으로 작성해서 OHP 용지에 복사를 해서 발표 했다.
지금도 프로젝트기간이나 학생들에게 교육할땐 잘 정리된 파워포인트 자료보단
보드마커를 들고 직접 그림을 그려가면서 하는데
심후한 내공으로부터 뻗어나오는 빠르고 정확한 서체 3초식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들 감탄의 기운을 토해낸다.
그런던 어느날 친구가 보험설계사하는 후배한테 내 전화번호를 알려줬단다.
워낙에 보험회사를 미덥게 생각치 않는 나였기에
기다리면서 기분나쁘지 않게 거절하리라 생각했던 터였다.
30분이나 기다렸다. 영업의 기본이 안된 보험아줌마에게는
아무리 친구 후배라지만 예의따위 지킬.... 헉
"아름답다!"
그냥 보통의 보험아줌마를 생각해온 나로선 잠시 멍했다.
영웅본색이라 했던가....
이전의 굳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내 난 나의 심오한 3초식을 보여주리라 마음을 먹었다.
알프스 최고봉의 기운까지 더한다면 제대로된 각인이 되리라...
정장 속주머니에 꽂힌 만년필을 제차 확인한다.
벌써 3번째인가....?
그동안은 반시간 남짓한 만남이었지만
오늘은 계약서를 작성하는 날이었기에 저녁식사도 겸한 만남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보험 계약이다.
하지만 이것이 나에게서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할
이면계약이라는걸 그녀는 알까?
'우무 우무 우무훼훼훼훼~~~'
볼펜을 내미는 그녀를 외면하고 속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낸다.
여기서부터는 그녀를 보지 않고 쓰기에 집중해야 한다.
물끄러미 쳐다본다. 아니 그런느낌이다.
아니 그것 외에는 딱히 할것도 없을것이다.
외통수...
이윽고 나의 3초식을 받아내지 못하고 외마디 비명을 토해낸다...
"글씨를 참 잘 쓰시네요. 글씨 이쁘게 쓰는 사람이 제 이상형이에요"
지금이다. 분주히 놀리던 만년필을 잠시 멈추며 고개를 들고
그녀의 얼굴 보며 눈웃음 곁들인 미소를 보내는 타이밍.
"차가워 너무나 ♪ 냉면 냉면 냉면 ♬ "
순간 내가 날린 살인미소는 그녀의 오른쪽 볼의 싸대기를 때렸고
조그만 파우치 속의 핸드폰을 한참 동안이나 찾는다.
나가서 전화를 받고 온 그녀는
죄송하다며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 봐야 한단다.
'그럼 저녁은 ? 다음에 먹자는 얘기도 없네 ?'
급한 일이라기에 그냥 보내주기는 한다만
내 오늘의 치욕은 언젠가 기필코 되갚아 주리라.
참 쎈스없게 언제적 노래인지...
카페에서는 백지영의 '총맞은 것처럼' 이 흘러 나온다.
'총맞은 것처럼 정말 ♪ 가슴이 너무 아파 ♬ ~~ '
난 오늘도 복수의 펜을 간다.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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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매
2009.09.0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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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jan
2009.09.07 14:42
,,,음,,,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꼭 알려주세요 ㅋㅋ -
[전라]앵벌이
2009.09.07 18:21
넘 잼있어요~~~~~꼭 좀 나중일좀 알려주세요~~~ -
필보이
2009.09.07 19:43
소설 읽는듯한 느낌~ 글속으로 빠져드네요~ㅋ
후기가 궁금합니다^^ㅎㅎ -
럭셔리라셍이
2009.09.07 20:45
정말이지 소설같은 이야기 이네요~ 하지만 여자분이 왠지 껄음직한...
다음 이야기 기대되네요~^^ -
본색
2009.09.08 10:24
24000번째 글인데 선물 없나요 -_-?????? -
은쎄리
2009.09.09 13:28
글씨체가 궁금합니다..^^
시간나실때 글씨체 스캔해서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따라서 배우겠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